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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리뷰

데미안, 헤르만 헤세

데미안
국내도서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전영애역
출판 : 민음사 200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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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마치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데미안이라는 세 글자는 이미 많은 문화에서 자아성찰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완전함을 알지 못한 채, 깨어져 버린 거울 조각을 만지는 것처럼, 온전한 자신을 보기 위한 노력은 결국 자신을 상처 입힌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처 속에서 새 살을 언제나 그렇듯이 돋아난다. 이렇듯 데미안이란 책은 사물의 본질이 갖는 핵심과 그에 따른 철학적 의문, 더 나아가 영혼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은 우리들이 스스로라고 느낄 만큼 인류사의 범적인 존재이다. 어릴 적 그는 따듯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두려운 존재를 마주하고 선망의 대상을 찾는다. 그는 어린이를 위한 밝은 세상 속에서 자랐지만 세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세계에 대해서도 알기 시작했다. 그것은 완전했던 그의 가치관에 생기는 '첫 균열'이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틈새와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누구나가 겪게 되는 인생사의 한 부분인 것이다.


인생은 선택 그 자체이다. 그 선택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간에 우리는 매 순간순간의 중첩이자 우연의 산물로 존재한다. 우리의 인생은 혹은 우리 자신은 선택이 취합된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에 있어서 신중하며 혹은 두려움에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행히도 그때는 주사위 놀이를 좋아하는 신이 언제든, 기꺼이, 우릴 위해 주사위를 돌려준다.


우리의 열 번의 선택 중 한 번은 자유의지란 것을 우리는 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의 결과를 모른다. 시간이라는 정답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따라서 답안지를 보기 전에 우리는 미래를 추론한다. 그리고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신비' 혹은 '공포'. 나에게 이로운 것은 신비이며 해로운 것은 공포인 것이다. 신비는 선, 공포는 악, 주인공 싱클레어의 밝은 세계에서 절대적 가치관이었던 이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이를 구제해 준 것이 바로 데미안이었다.


어느 상황에서 나 초연하고 자신이 갈망하는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선망한다. 기독교가 기다리는 '메시아'보다는 니체가 바라오던 '초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초인은 싱클레어에게 있어서는 데미안이었다. 그는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 이분법적인 경계선을 초월한 이상한 존재인 것이다. 외모조차 중성적인 그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철저히 분해시켰다. 그리고 그는 선도 그리고 악도 절대적 가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것들은 하나의 의견인 것이다. 마치 아프락시스처럼. 그는 세계 자체를 그대로 이해한다. 그곳엔 인류사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지만 그 자체가 인류사의 가치가 되어 버린다. 존재와 인식의 상이함. 그 불균형이 세계를 움직이며 그것을 이해한 자들을 아프락시스를 섬기는 자라고 그는 말한다. 


싱클레어는 내면 속에서 외치던 이상향을 만들어간다. 처음엔 흐릿한 그 초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데미안의 엄마였다. 이는 우리의 이상향을 찾는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막연한 이상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혼란을 겪는다. 관념을 형상화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확실한 질문과 대답을 한다. 마치 스무 고개에서 원하는 값을 찾기 위해선 크게 이분법으로 나누어 질문하는 것이 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듯이 유사한 과정을 통해 답을 얻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는 매번 바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이미 다른 선택을 하여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속에서 그 선택을 한 나 자신이 있을 뿐, 나란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 있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 속에서 존재하는 관념일 뿐 그림자가 가지는 실체는 아니다. 


현실 속에서 사람을 선과 악으로 세상을 구분 지을 수는 없다. 선을 몇 번 선택하고 악을 몇 번 선택한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나를 선택의 시점에서 관찰한 타인이 존재할 뿐이다. 데미안이 전하는 가치관은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을 초월하여 신념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