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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리뷰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카를로 로벨리-

앞으로는 이렇게 읽은 책들을 바로 블로그 글에 저장할 생각. 본래는 워드에 저장했었는데 이 방식이 조금 더 나을듯함.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는 동기로 조금 더 집중해서 읽는 느낌이기도 하고 자기 만족으로 혼자서 읽고 남기는 것 보다 조금 더 성의있게 글을 작성하는 느낌이라 앞으로의 독서 감상은 바로 올릴 예정.

 

챕터 1.

 

양자역학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서술. 현상 인식과 그에 따른 여러 과학자들의 상호작용과 그 과정이 서술되어있다.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듯 보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아마 난해하게 느껴질 거라 짐작된다. 그렇다고 정보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도 아니라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다. 사관의 관점에서 보는 양자역학의 역사 같은 느낌.

 

챕터 2.

 

여기부터가 진짜이며 재밌다. 레이저 실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기본적으로 내가 알고 있던 예시랑 같지만 디테일적인 부분에서는 다르고 조금 더 흥미로웠다.

-다세계해석

최소 작용 원리, 페르마의 원리처럼 이 세계는 무한이랑은 거리가 멀어보임.

따라서 개인적으론 믿기 힘든 해석.

정말로 선택의 순간(서로 다른 시스템의 상호작용 순간)마다 세상이 확장되어간다면 정말로 흥미롭겠지만 세상의 원리를 봤을 때는 회의적.

-숨은변수이론

종교와 비슷하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과 사후 세계를 믿을 것인가.

 

챕터 3.

 

대상의 속성은 그 속성이 발현될 때의 상호작용과 분리할 수 없으며, 나아가 그 속성이 발현되는 상대 대상과도 분리할 수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와 같은 맥락.

감각 기관이 없다면 ‘관찰자’라는 것이 성립할까?

속성은 상대적이다.

누군에겐 존재하는 속성이 다른 누군가에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양자 중첩으로 각각의 객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다른 특징을 지닐 수 밖에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고 이는 상대성이론과 비슷.

기준점이 없는 속도란 존재하지 않음. 결국 속성이란 관계.

두개의 물체의 파동의 성질을 각각 안 다고 해도 두개가 합쳐졌을 때의 성질은 모른다.

그 이상임. 약간 비가역성이랑 비슷한 느낌?

 양자 얽힘 스핀에 관한 현상 중에서 업스핀 다운스핀을 떨어 뜨려 놓고 한쪽을 관찰하면 다른 한쪽의 스핀 상태가 결정되는 걸 저자는 얽힘이란 현상 자체가 관찰자와 두 대상 즉 세개의 객체가 상호작용하는 것이지 두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명함.

 한쪽의 관찰로 다른 쪽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 보게되는 순간 결정되어지는 것 물론 정보로는 알고 있지만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 어쨋거나 확실하게 확인을 하려면 어쨋거나 빛의 속도로 가서 얽혀있는 제 3자가 직접 확인해야하기 때문.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 = 얽힘 = 속성의 발현(현실화) = 상관관계 형성

 

챕터 4.

 

양자 물리학의 공준

1.     정보는 유한하다 ->무한히 정밀하게 파악 = 정보 무한.

But 플랑크상수 때문 정보 유한

2.     상호작용으로 항상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비가환성)

하이젠베르크 행렬, 순서가 중요.

이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란 정보의 변화량인듯. 변화가 없다면 실제로 시간이란 무의미하고 변화량도 상대적인 수치

 

 우리가 보는 세상은 플랑크 길이가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의 대상들을 관찰하기 때문에 그 입자들이 갖는 평균 값을 보게되고 입자성은 보이지 않음. 일종의 수렴값들을 관찰하는 거임. 일종의 근사치. 이 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완전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자체 불가능할 듯? 이 세상은 절대값이 아니라 근사치의 중첩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심지어 그 근사치들의 값들도 파편화되고 고정된 시야각으로 보기 때문에 불완전.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우리의 해석. 실재라고 불릴만한 것들도 근사치의 총합인데 거기서 정보의 해석에는 흐릿한 렌즈까지 더해짐.

 

챕터 5.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갈등을 레닌과 마흐의 가치관으로 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 결국 형이상학적 절대성 보다는 현상 그 자체로 세계 이해를 하도록 노력해야한다가 결론. 이는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음.

의문점 빛의 속도 및 입자의 특정 궤도 등 자연에서도 이러한 절대적 현상들이 보여짐.

 

결론 이 세상은 실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관계의 관점으로 이루어져있다. 궁극적 실재라기 보다는 맥락 속에서 존재.

panta rhei 모든 것은 흐른다

 

근본중송,중관론송 - 나가르주나 인도 철학의 초석

세계를 두가지로 나눔. 관점에 따라 바뀌는 외관적 현실 vs 궁극적 실재 (아무것도 없음) 시작점도 없음 삼사라

재밌는 점 궁극적 실재인 공 조차도 비어있다. 비어있다는 것 자체도 비어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세상의 진리는 한 가지인데 세상의 진리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과 일맥상통 이걸 보통 순환식 논리라고 표현. 개인적으론 이러한 순환식 논리가 실재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긴함.

 

자립적인 본질 없이도 의존성과 상호 관계를 통해 세상 해석이 가능하다가 결론.

 

질문 - 모든것이 자립적인 본질이 없어도 상호 관계를 통해 그 본질을 획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단락 - '우리는 이미지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실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얇고 연약한 베일일 뿐이며,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챕터 6

 

의미의 정보론적인 관점에서의 해석 - 새넌 - 정보이론 - 상대적 정보 = 두 변수 간의 물리적 상관관계

생명체의 진화는 자연선택과 변이로 이루어지고 이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반대로 그 점이 강조됨. 각 환경에 맞는 적절한 개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 하지만 의미에는 과학에서의 벡터값처럼 방향성이 존재하는데 자연선택은 이를 설명하지 못 함. 

 

정보 + 진화 

 

정보가 있다 = 3개의 객체가 존재하고 상관관계를 알고 있다. = 예측할 수 있다

정보 = 물리적 구조 그 위에 더 복잡한 개념 놓이고 의미를 갖게 됨

 

데이비드 차머스의 좀비 - 기계인데 인간의 모든 행동 재현 

(- 인공지능에서 중국어 방이랑 비슷한듯?)

근데 속은 비어있음. 그 비어있는 무언가가 의식이라고 주장.

우리는 1인칭으로 경험하고 이는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를 나눔.

 

but 앞선 양자역학적인 관점으로 돌아가 세상을 관계로 이해한다면 세상에 대한 인식은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음.

세상을 이해하고 내가 생각한다는 건 최소 3개의 객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분리시켜 두 대상간의 관계만을 고립 시킨채 나와 분리 시키면 그건 그 정보 자체가 소실됨. 즉, 의미가 없음. 이는 세계는 나의 내부와 외부로 나뉘는 것이 아닌 모두 내 내부에서 나온다고 해석하는 편이 합당.

 

예를들어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스크린 속의 세계와 나를 분리시킨다는 직관을 갖지만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고 관찰하는 건 우리도 그 스크린 속의 포함된 한 부분이지 3인칭 시점이 아니란 의미. 현실에서 관객은 존재x

 

마음

-이원론 - 관념론 -유물론

저자는 세 가지 모두 부정. 영혼과 같은 걸 인정하는 건 과거에 우리가 자연 현상을 제우스가 분노했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논리이고 유물론적인 해석은 결국 고전역학적인 해석으로 모든게 예측 가능하단 건데 이도 틀리다고 주장. 모든 건 상대적인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구조가 발현된 현상.

 

챕터 7

 

뇌의 작동방식

관찰 ->신경회로 정보전달 -> 뇌의해석 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사실

뇌의 예상 -> 관찰 -> 예상과 다른 부분만 정보전달 순으로 이루어짐.

PCM가설(투사적 의식 모델) 

 

결국 관념적인 개념이든 물질적인 실체든 삼체의 결합(집단)으로 완성된다고 생각된다. 수학적인 개념으로 점과 그리고 점두개가 이어진 선은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명확한 실체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점이 세개모인 면부터는 다르다. 또한 일상적으로 우리가 그리는 2차원의 그래프 또한 결국 두 고정된 값에서 다른 한 가지 값만이 변동한다. 이는 마치 삼각형의 면의 변화 즉, 상관관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두 변이 고정되지 않는다면 이 삼체(삼각형)의 형태는 예측 불가하며 역시 그 상관관계 또한 알 수 없다. 이는 즉, 우리의 이데아의 최소 단위라고 생각된다. 또한 면 부터 각 점은 순환이 가능하다. 다른 말로 하면 원점 회귀가 가능하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닫힌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두 개체로는 상관관계를 나타내기 불가능하다. 수학적인 형태라면 더하거나 뺄 수 있겠지만 그냥 두 사물만 놓고 본다면 저 형태의 관계 외에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수식에 한 가지의 미지수만 더 해지면 세 개체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A = B , B = A

A + B = C, B = A - C, A = B/C...

 

최소 세개의 점이 모여 닫힌 형태로 모여 자기 순환이 가능하며 닫힌 형태로 외부와 구분 가능한 상태.